
퀴린 판 브레켈렌캄
1622–1668 · 네덜란드 공화국 · 바로크, 레이던 정밀화파
이야기
장바구니 양동이를 팔에 건 여인이 재단사의 작업장에 서서 외투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재단사들은 햇빛을 최대한 받으려고 창가의 높은 단 위에서 일한다. 그들 뒤 벽에는 작은 강 풍경화가 걸려 있는데, 소박한 집에도 그림이 있었다는 증거다. 크비레인 판 브레컬렌캄은 1661년 무렵 레이던에서 이 장면을 그렸다. 그가 1653년부터 1664년 사이에 그린 재단사와 구두장이 작업장 그림은 약 25점에 이른다. 그는 이 일을 집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레이던 근처 마을 즈바메르담의 재단사였고, 화가는 1622년 무렵 그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레이던은 직물로 먹고사는 도시였고, 브레컬렌캄은 재단사와 실 잣는 여인, 바느질하는 여인처럼 옷감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거듭 돌아갔다. 전통적으로 그는 작고 극도로 정교한 그림으로 이름난 레이던의 화가 헤릿 다우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1646년의 한 문서에는 실제로 두 사람이 함께 서명한 기록이 있지만, 도제 관계 자체는 입증되지 않았다. 레이던 화가들이 자신들만의 성 루가 길드를 세운 1648년에 그는 길드에 가입했고, 같은 해 봄 가톨릭 성당에서 마리아 샤를레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그녀가 1655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섯 아이를 두었고, 그는 두 번째 아내 엘리사벳 드 보몽과의 사이에서 적어도 세 아이를 더 얻었다. 1656년 무렵에는 맥주와 브랜디를 팔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흔히 그림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래도 17세기의 가재 목록에는 그의 그림이 55점 넘게 올라 있고, 많게는 18점을 가진 수집가도 있었다. 그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1668년 5월 막내아이의 세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