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 정물
상세 정보
이야기
1672년 6월 프랑스군이 위트레흐트에 들어왔고, 도시는 이듬해 말까지 점령 상태로 남았습니다. 아브라함 미뇽은 그곳 얀 다비츠 더 헤임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점령과 함께 두 사람의 협업은 끝이 났습니다. 더 헤임은 안트베르펜으로 떠났고, 미뇽은 위트레흐트에 남아 공방을 넘겨받았습니다. 같은 해 도시의 왈롱 교회, 곧 프랑스어를 쓰는 개신교 회중이 그를 집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았습니다. 미술관은 이 캔버스를 1670년에서 1672년 무렵의 작품으로 보는데, 두 화가가 나란히 일한 마지막 몇 해에 해당합니다. 양귀비, 줄무늬 튤립, 장미, 파란 붓꽃이 어두운 돌 벽감 속 금속 꽃병에서 넘쳐 나옵니다. 토리노에서 이 그림은 더 헤임이 직접 그린 과일과 꽃 화환 그림과 같은 북쪽 회랑에 걸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