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ssily Kandinsky · PD
친밀한 축하연
상세 정보
이야기
1942년, 파리는 독일에 점령된 지 이미 두 해째였고, 나이 든 칸딘스키는 도시 서쪽 끝 뇌이의 작은 아파트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나치는 그의 예술을 ‘퇴폐 미술’로 낙인찍어 독일의 미술관들에서 걷어 냈다. 재료가 부족했으므로, 그 시절 많은 화가처럼 그도 작은 화면에, 주로 판지 위에 템페라로 그렸다. 이제 그것은 바우하우스 시절의 엄격한 기하학이 아니었다. 배아와 아메바, 조수 웅덩이의 작은 생물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럽고 미세한 생물형태의 세계였다. 이런 형상들은 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유를 통해 그를 조금씩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 한 점을 그는 ‘은밀한 축제’라 불렀는데, 고요한 바탕 위로 떠도는 몇몇 형상이 조촐하게 모여 있다. 이런 미니어처 세계를 그는 1944년 뇌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