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erre-Auguste Renoir · CC-BY-SA-4.0
망트농 근교
상세 정보
이야기
1888년 무렵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그는 윤곽을 더 단단하게 긋고 색을 차갑게 눌러 왔는데, 앵그르와 이탈리아 프레스코를 연구한 뒤에 다듬어 낸, 그 자신이 '시큼한' 화법이라 부른 방식이었다. 파리 남서쪽 외르에루아르 지방의 작은 도시 맹트농 외곽을 그린 이 풍경은, 그가 다시 그 긴장을 풀고 시골로 나선 순간을 담고 있다. 맹트농을 내려다보는 것은 성관과 돌로 쌓은 높은 아치의 수도교다. 루이 14세가 1680년대에 베르사유 분수로 물을 대려고 착공했다가 십여 년 뒤 미완인 채 버려둔 구조물이다. 순수한 풍경화는 르누아르에게 드문 일이었다. 인물이 거의 언제나 먼저였다. 바로 그해, 류머티즘의 첫 발작이 그를 덮쳤다. 이런 그림을 그린 두 손을 훗날 조금씩 굳게 만들 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