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스로카르토노의 초상
상세 정보
이야기
1899년 9월, 벨기에 헨트에서 열린 네덜란드어·네덜란드 문학 대회에서 한 젊은 자와인 학생이 연단에 올라, 자기 민족을 유럽인이나 반쯤 유럽인으로 만들고 그 전통을 짓밟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적으로 여기겠다고 선언했다. 소스로카르토노였다. 당시 레이던에서 공부하던 그는 네덜란드 대학에 정식으로 입학한 최초의 인도네시아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 나라의 유대를 굳히려면 자와인이 네덜란드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전한다. 그의 여동생은 자와 여성의 교육에 관한 편지들이 1911년 네덜란드에서 책으로 출간된 카르티니다. 이사크 이스라엘스는 1916년 무렵 헤이그의 작업실에서 인도네시아 유학생 여러 명을 그렸고, 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세로로 길쭉한 캔버스에 선 채로 전신이 그려져 있다. 소스로카르토노는 훗날 종군 기자로 일했고, 국제연맹의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