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크 이스라엘스
1865–1934 · 네덜란드 왕국 · 암스테르담 인상주의
이야기
이사크 이스라엘스는 자신의 첫 캔버스에 서명할 때 성(姓)의 'e' 위에 있는 두 점을 지웠다. 그의 아버지는 헤이그 화파에서 가장 사랑받은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요제프 이스라엘스였고, 아들은 대중이 곧바로 집안을 떠올리지 않을 서명을 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화실에서 배웠지만, 그가 좇은 것은 더 빠르고 더 현대적인 것이었다.
그는 188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그것을 찾았고, 곁에는 헤이그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만난 화가 헤오르흐 헨드릭 브레이트너르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암스테르담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꼽히며, 그 우정은 존경과 경쟁심이 반반씩 뒤섞여 있었다. 1892년 이스라엘스는 한 화랑 진열창에 걸린 브레이트너르의 도시 풍경 앞에 멈춰 서서 자신은 이에 미칠 수 없다고 솔직히 인정했지만, 또 다른 때에는 브레이트너르가 앞서 나가는 이스라엘스를 지켜보아야 했다.
파리 여행은 그를 마네와 드가 앞에 세웠고, 그는 프랑스인의 밝은 색채를 받아들인 몇 안 되는 네덜란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움직이는 도시를 좋아했다. 카페의 실내, 바느질 작업장, 거리의 멋쟁이 여인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몇 점은 암스테르담의 패션 하우스 히르슈 안에서 그려졌는데, 그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마네킹 모델과 여점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