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 이론가 카를로 로돌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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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 초상의 인물은 귀족이 아니라 한 사람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다. 그리고 그는 자기 세기의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별난 지성 가운데 하나였다. 카를로 로돌리는 젊은 귀족들에게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쳤고, 당시 거의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던 주장을 폈다. 건물의 형태는 그 재료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돌을 나무의 형태를 흉내 내어 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건축의 소크라테스’라 불렀는데, 소크라테스처럼 그도 거의 아무것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전해진 것은 오로지 옛 제자들이 그가 떠난 뒤 종이에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로돌리는 176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초상은 이미 없는 사람을 되돌아본다. 롱기는 색조를 어둡고 흙빛으로 낮추어 거의 하나의 갈색에 가깝게 하고, 수도사를 몇 권의 책과 종이 사이에 앉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