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센 선제후 요한 1세와 현명공 프리드리히 3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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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 쌍으로 만들어진 작은 패널 두 점인데, 그림 속 두 사람은 제작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한쪽은 작센 선제후 현명공 프리드리히다. 그는 1521년 황제가 루터를 법 밖으로 내몬 뒤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시켜 지켜 주었고, 1525년에 죽었다. 그 옆은 동생 강건공 요한으로, 이 보호를 이어 가다 1532년에 죽었다. 이듬해 후계자 요한 프리드리히는 두 선제후의 초상 60쌍을 크라나흐에게 주문했다. 그의 비텐베르크 공방은 작센 궁정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라이프치히의 회계 장부에는 1533년 오월 십일의 지급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쌍들은 하나의 주장을 실어 보내졌다. 작센의 개신교 지도력이 삼촌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로 끊김 없이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한 쌍은 훨씬 뒤에야 피렌체에 이르렀는데, 우르비노에서 온 신부의 혼수 일부로 메디치가의 소장품에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