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메디치 가문의 이 시골 별장 맨 위층에는 16개 방에 걸쳐 정물화 약 200점이 걸려 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토스카나 대공가를 위해 그려진 그림들이다. 상당수는 피렌체 화가 바르톨로메오 빔비 한 사람의 작품으로, 코시모 3세는 자기 영지에서 나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에 그를 붙들어 두었다. 큰 화폭 12점은 토스카나에서 자란 감귤류와 포도, 배, 복숭아, 무화과를 품종별로 늘어놓고, 화면 아래에는 하나하나의 이름을 적은 목록이 붙어 있다. 1720년 머리가 둘 달린 새끼 양이 태어났을 때도 그 일은 빔비에게 돌아갔다. 그림의 명문은 그 짐승의 몸 안에서 나온 것을 적어 두었다. 심장이 둘, 간이 둘, 지라가 둘이었다. 같은 층에는 얀 브뤼헐(대)의 꽃병 그림과 조반나 가르초니가 그린 버찌 접시도 있다.
그 아래가 먼저 지어진 저택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 이른바 일 마니피코는 1470년대에 이곳 농장을 사들여 줄리아노 다 상갈로에게 별장으로 고쳐 짓게 했다. 현관 로지아 위에는 신전 같은 박공이 얹혔고 그 안은 유약 바른 테라코타 프리즈로 채워졌다. 고대 신전의 정면을 내건 가장 이른 개인 저택 가운데 하나였다. 반원통형 볼트 천장의 큰 홀은 로렌초의 아들인 교황 레오 10세 때 완성되어 1519년부터 안드레아 델 사르토, 프란차비조, 폰토르모가 프레스코를 그렸다. 폰토르모가 맡은 반원형 벽면에는 계절의 순환과 과수원을 관장하는 로마 신 베르툼누스와 포모나가 월계수 가지 아래 낮은 담에 시골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1587년 10월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아내 비앙카 카펠로가 하루 사이로 이 별장에서 숨졌다. 기록된 사인은 삼일열이었고, 이 일은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저택은 1919년 이탈리아 국가로 넘어갔고, 정물화 방들은 2007년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빔비가 그린 과일 그림은 오늘날 재배가 끊긴 토스카나 품종을 가려내는 연구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