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를 든 남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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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956년, 한스 하인리히 티센보르네미사는 네덜란드 베네브룩의 한 컬렉션에서 이 작은 초상화를 샀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림이 많던 그가 직접 골라 산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림의 이력은 훨씬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18세기에는 볼로냐의 보스키 후작 가문 저택에 걸려 있었고, 그 집안의 재산 목록에는 볼로냐의 금세공인이자 화가인 프란체스코 프란차의 초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1913년에야 1470년대 볼로냐에서 활동한 페라라 출신 화가 프란체스코 델 코사의 작품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의견은 갈렸습니다. 미국의 감정가 버나드 베런슨은 같은 페라라 출신인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의 작품으로 보았고,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로베르토 롱기는 코사를 지지했으며, 미술관은 롱기의 견해를 따릅니다. 모델의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15년 영국의 미술사학자 허버트 쿡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페라라를 다스린 에스테 가문의 문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들어 이 가문의 인물로 추정했습니다. 미술관은 약혼을 기념한 초상일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반지는 지금도 젊은이의 검지 끝에 곧게 서 있고, 새끼손가락은 돌 난간 너머 우리 쪽으로 걸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