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로스 브리자키스
1814–1878 · 그리스 왕국, 오스만 제국 · 뮌헨 화파, 낭만주의, 아카데미 미술
이야기
1821년 5월, 오스만 지배에 맞선 그리스 봉기가 시작된 몇 달 뒤, 오스만 군대는 테베 출신 전사 페트로스 브리자키스를 교수형에 처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당시 일곱 살쯤이던 아들 테오도로스는 새 그리스 국가의 첫 통치자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에기나섬에 세운 고아원에 들어갔다. 1832년에는 그의 소묘가 바이에른의 고전학자 프리드리히 티르슈의 눈에 들었고, 티르슈는 그를 뮌헨으로 데려가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가 그리스 혁명 고아들을 위해 운영하던 학교 판엘리니온에 넣었다.
1844년 그는 장학금을 받아 뮌헨으로 돌아가 아카데미에서 페터 폰 헤스와 카를 빌헬름 폰 하이데크에게 배웠다. 두 사람 모두 전쟁 기간에 그리스에 머물렀던 바이에른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젊은 왕국의 건국 장면들은 남의 증언에 기대어 바이에른에서 그려졌다. 1853년에 '메솔롱기 탈출', 1855년에 그리스 지휘관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스카키스의 진영, 그리고 1861년에 '메솔롱기에서의 바이런 경 환영'이 나왔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그 도시에 도착한 것은 1824년 1월이고, 석 달 뒤 거기서 죽었다. 브리자키스가 그 장면을 그린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지 37년 뒤였다.
1865년에는 아기아 라브라 수도원에서 옛 파트라 주교 게르마노스가 혁명의 깃발을 축복하는 장면을 그렸다. 역사가들은 그 의식을 후대의 전설로 보지만, 그리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은 그가 그린 이 장면이다. 마지막 십 년은 눈병 때문에 뮌헨 미술계에서 멀어져 있었다. 1878년 뮌헨에서 세상을 떠났고, 작업실에 남은 작품들을 아테네 대학에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