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vard Munch · PD
매음굴 장면
상세 정보
이야기
1903년의 뭉크에게는 고정된 주소가 없었다. 파리와 베를린, 독일 북부 도시들을 오가며 호텔과 셋방에 머물렀고 전시 일정에 맞춰 짐을 쌌다 풀었다 했다. 이 사창가 장면도 그 떠돌던 시기의 그림이다.
이런 방은 그가 청년기부터 알던 세계였다. 크리스티아니아, 지금의 오슬로에서 그가 어울리던 보헤미안 무리는 결혼과 정숙함을 공공연히 공격했고 그 논쟁의 밑바닥에는 늘 매춘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뭉크는 이 소재를 한 번 그리고 말지 않았다. 몇 해 뒤 독일 발트해 연안의 바르네뮌데에서도 비슷한 실내를 여러 점 그렸다.
바탕은 밑칠조차 하지 않은 판지다. 값싸고 가벼워 여행 가방에 들어가는 재료였고 거친 표면이 물감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그는 이 판지를 팔지 않고 곁에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