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키얼 골드스웨이트
상세 정보
이야기
1771년 보스턴 급진파 가운데 가장 정력적이던 새뮤얼 애덤스가 부동산 등기관 자리에 출마했습니다. 그는 두 배가 넘는 표를 얻은 이지키얼 골드스웨이트에게 졌습니다. 골드스웨이트는 1740년부터 카운티의 등기부를 맡아 왔고, 20년 동안 보스턴의 시 서기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예순한 살, 노스엔드 상인 집안 출신으로, 평생 대부분 도시의 기록이 그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같은 해 그는 코플리에게 자신과 아내 엘리자베스의 초상화를 주문했습니다. 1771년 6월 자 화가의 청구서가 미술관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는데, 그림 한 점에 19파운드 12실링, 액자 하나에 9파운드였습니다. 코플리는 그를 책상 앞에 앉히고, 한 손에는 깃펜을, 다른 손에는 글이 적힌 종이를 쥐여 주었습니다. 그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돌아보고, 빛은 얼굴과 흰 소맷부리에 떨어집니다.
골드스웨이트는 1776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음은 왕실 편이었지만 영국군이 떠난 뒤에도 보스턴에 남았고, 1782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초상화는 1941년까지 후손들이 간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