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비탈리스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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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성 비탈리스의 순교는 생매장이었다. 라벤나에서 신앙을 고백한 로마 군인이 방금 파낸 구덩이로 떠밀리고 있다. 한 처형자는 무거운 돌을 그의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다른 한 사람은 파낸 흙을 들고 덮을 차례를 기다린다. 재판관은 천개가 달린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천사가 순교자의 종려 가지와 관을 들고 내려온다. 구경꾼들 사이에 바로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를 끼워 넣었다.
라벤나 산 비탈레 수도원의 베네딕도회 수사들은 첫 밑그림을 돌려보내며 인물을 더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제단화에는 한눈에 읽히는 것과 목격자가 그려져 있는 것이 요구되었다. 작업이 느렸던 바로치는 우르비노를 떠나지 않은 채 확대한 화면에 1583년의 서명을 남겼다.
이 그림은 뒤에 제의실로 옮겨졌고, 1811년 나폴레옹 몰수와 함께 밀라노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