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dier Descouens · CC-BY-SA-4.0
남성의 머리와 몸통 습작
상세 정보
이야기
1797년 8월, 툴루즈에서 온 17세 소년이 파리에 닿아 자크루이 다비드의 화실에 들어갔다. 공화국이 선 지 다섯 해째였다. 국민공회 의원으로 왕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던 다비드는 공포정치와 수감 생활을 지나 프랑스 회화의 맨 앞자리로 돌아와 있었고, 그때 사비니 여인들을 그린 거대한 캔버스에 매달려 있었다. 그 화실의 제자들이 온종일 한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살아 있는 모델을 놓고 머리와 상반신을 그리는 일, 이야기도 배경도 없이 인물만 한 부분씩 쌓아 올리는 일이다. 앵그르는 4년쯤 그곳에 머물렀다. 1801년 그는 로마대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