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르넬리스 판 하를럼
1562–1638 · 네덜란드 공화국 · 매너리즘
이야기
1580년대 중엽, 하를럼의 화가 세 사람이 실물과 석고상을 앞에 두고 함께 소묘하려 모이기 시작했다. 훗날 '하를럼 아카데미'라 불린 느슨한 형제단이다. 한 사람은 판화가 헨드릭 홀치우스, 한 사람은 화가이자 전기 작가 카럴 판 만더르, 그리고 세 번째가 코르넬리스 판 하를럼이었다. 판 만더르는 마침 이탈리아에서 프라하 황제의 궁정화가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허르의 소묘를 가지고 돌아온 참이었고, 길게 늘이고 비틀린 그 몸들이 이 무리의 초기 양식을 정했다.
십 년 동안 코르넬리스는 불가능한 자세를 취한 근육질 나체로 빼곡한 거대한 화폭을 그렸다. 신들과 성경 속 죄인들이 온갖 까다로운 각도에서 한꺼번에 보인다. 그의 《영아 학살》은 화면 전체를 채우는 팽팽한 사지의 엉킴이다. 그 작품은 영리하고, 근육질이며,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졌다.
이윽고 그는 차분해졌다. 새 세기가 열리자 그의 인물은 더 단순하고 자연스러워졌고, 일상적인 네덜란드 회화에 가까워졌다. 그는 하를럼시의 공식 화가가 되어 시민 자경대 각 중대의 초상과 집단화를 그렸다. 그 절제되고 실물 크기인 초상들은 그를 젊은 프란스 할스의 직접적인 선구자로 만들었다. 할스야말로 하를럼의 시민 자경대를 이어받은 다음 화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