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나는 노예
상세 정보
이야기
1530년 8월, 피렌체는 거의 한 해에 걸친 포위 끝에 항복했고 메디치 가문이 다시 도시를 장악했다. 포위 기간 동안 공화국의 요새를 설계했던 미켈란젤로는 몸을 숨겼다가, 같은 메디치 가문 출신인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사면을 받고 다시 끌을 잡았다. 율리오 2세의 무덤을 위한 이 포로상은 보통 1530년대 초로 추정된다. 덩어리에서 앞으로 나온 것은 몸통과 구부린 한쪽 다리뿐이고, 머리는 위쪽의 거친 돌 속에 가라앉아 있다. 표면에는 작업 순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먼저 뾰족한 정이 남긴 깊은 자국, 그다음 톱니 끌이 낸 가늘고 나란한 홈이 허벅지와 주변 돌 위에서 서로 엇갈린다. 깨어나는 노예라는 이름은 돌덩이 안에서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듯한 몸짓에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