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같은 포위전을 그린 두 점이 19세기 회화 전시실에서 서로 마주 보고 걸려 있고, 그리스 관람객 상당수는 이 두 점을 보러 온다. 테오도로스 브리자키스는 오스만 군에 포위된 서부 그리스의 도시 미솔롱기에서의 탈출과, 그 도시가 영국 시인 바이런을 맞이한 장면을 그렸다. 바이런은 그리스 편에서 싸우려고 왔다가 1824년 그 도시에서 숨졌다. 바로 옆에는 흰 주름치마 푸스타넬라를 입은 전사 한 명이 말을 타고 전장을 달리는 그림이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1856년에 그린 것으로, 그때 파리에서는 그리스 독립이 이미 수십 년째 하나의 명분이었다.
미술관은 8년간 문을 닫고 공사를 거쳐 2021년 3월 24일에 다시 열었다. 그 혁명의 200주년 하루 전이었고, 공사로 면적은 두 배 넘게 늘었다. 안에 있는 것은 독립 이후의 그리스 회화다. 니콜라오스 기지스의 마지막 그림 「보라, 신랑이 오신다」는 1901년 그가 죽을 때까지 미완으로 남았다. 콘스탄티노스 볼라나키스의 항구, 테오도로스 랄리스의 오리엔탈리즘 장면, 그리고 1920년대에 델포이와 산토리니를 색의 면으로 정리한 콘스탄티노스 말레아스가 이어진다. 기지스와 니키포로스 리트라스, 게오르기오스 야코비디스는 모두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1900년 정부가 이 미술관을 꾸리라고 불러들인 사람이 야코비디스였다.
유럽 회화 쪽의 중심은 엘 그레코 세 점이다. 1931년 그리스 정부가 사들인 「천사들의 합주」는 크레타 태생의 화가가 1614년 톨레도에서 숨질 때까지 미완이었다. 「그리스도의 매장」과 「성 베드로」는 1990년대에 재단과 시민의 기부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플랑드르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의 「목자들의 경배」와 피트 몬드리안이 추상으로 가기 전인 1905년에 그린 풍차가 걸려 있다.
조각은 도시 반대편 국립조각관에서 볼 수 있고, 아테네 밖에는 나프플리오, 코르푸, 스파르타, 에기나에 분관 네 곳이 있다. 19세기 회화 전시실에는 수집가 에브리피디스 쿠틀리디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의 재단 그림이 국가 소장품과 나란히 걸려 있어서, 나란한 기지스 두 점의 소유자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소장품
작품 100점
프사라의 애가니키포로스 리트라스, 1888
성모 안식니콜라오스 독사라스, 1753
메솔롱기 탈출테오도로스 브리자키스, 1853
첫 따귀테오도로스 랄리스, 1908
어망콘스탄티노스 볼라나키스
분수아돌프 조제프 토마 몽티첼리
카발라 항구바실리오스 하지스, 1913
성가정파나요티스 독사라스, 1700
죄수테오도로스 랄리스, 1909
메솔롱기에서의 바이런 경 환영테오도로스 브리자키스, 1861
거미니콜라오스 기지스, 1884
밀짚모자니콜라오스 리트라스, 1925
학생요아니스 자하리아스, 1868
간구테오도로스 랄리스, 1907
테세이온과 아크로폴리스앙겔로스 얄리나스, 1895
서약니콜라오스 기지스, 1886
두 마리의 말로자 보뇌르, 1889
저녁 기도테오도로스 랄리스
죽은 탕헤르 파샤의 밤샘테오도로스 랄리스, 1884
강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콘스탄티노스 볼라나키스
풍차콘스탄티노스 볼라나키스
샘가의 여인테오도로스 랄리스, 1908
탬버린을 든 여인테오도로스 랄리스
악기 공방의 젊은 음악가체코 델 카라바조, 1622